2022년, 6월, 3일,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아멘.
네가 나의 사랑을 통해 구속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네 마음과 너의 삶을 채우는 하느님의 자비를 허용하여라.
언젠가는 네가 내 뜻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너의 삶의 일부가 되는 하느님의 자비를 허용하여라.
그러나 오늘 나는 너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비의 신비가 무엇이냐?
네가 나의 자비를 간청할 때, 너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느님의 자비는 단지 연민과, 긍휼 또는 용서의 행위인 것이냐?
하느님의 자비는 오직 이것만이 아니다, 너는 이러한 신비를 발견하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하고, 이 신비는 오직 십자가에서, 성부의 아들의 완전한 순복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부의 아들의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가 생명의 창조와 존재를 위해 허용된 것이었다.
이러한 예로, 이제 자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네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느냐?
모든 것이 빠르게 촉발되고 있는 중인, 인류 사회의 이 첨예한 시기에, 신의 자비가 의미하는 바를 네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긍휼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나 지칠 줄 모르는 연민의 행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비는 창조적인 원천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정연한 우주의 현시이다.
아버지의 천사들이 차원들과 평면들을 창조할 수 있도록,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로 충만해져야 했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태초에 그분의 마음 안에서 그것을 느끼셨던 것처럼, 그분께서 그분의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기원에서부터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셨던 것처럼,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사랑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여기 폴란드에서, 그리고 폴란드를 통하여, 전 세계에 성립하기 위해 왔었던, 하느님의 자비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자비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로 계속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오래 전에 내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도 나의 자비로운 얼굴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다시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의 광선들 아래에서, 피와 물의 빛 아래에서, 나의 자비에 접근할 수 있는 내 사랑의 신비를 통하여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신성한 자비를 통해, 너희의 자의식들과 본질들은 그렇게 많은 오류들과 경험들을 한 후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속죄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측량할 수 없는 자비의 권능을 통해, 너희의 자의식들은 내 사랑 안에서 확장될 수 있다. 너희가 연민과 자비를 베푸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내 사랑을 통해 이해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너희의 행동들과 순복들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은 내 자비의 불에 의해서 완전하게 될 것이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가져오는 이 속죄의 식탁은 육신에 속한 내 마음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과 온 우주에게 그의 자비의 임무를 확장한 나의 영적이며 질서정연한 우주적인 마음인, 내 성심의 깊은 곳들에서 계속 솟아나고 있다.
나의 측량할 수 없는 신성한 자비를 통해, 너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있었던, 지상에서의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의 사실들을 기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의 사실들을 통해서도 너희는 나의 자비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고, 지표면에서의 너희의 삶들이 전환되고 구속될 뿐만 아니라, 너희가 인류로서, 행성으로서 그리고 아버지의 프로젝트로서 잃어버린 그 기원을, 너희가 다시 획득할 수 있을 때까지, 너희의 영들도 전환되고 구속될 것이다.
나의 측량할 수 없는 자비를 통하여, 내가 폴란드에서 한 때 펼쳤던 이 강력한 통로의 실현을 강화하기 위해서 왔을 뿐만 아니라, 나는 나의 신성한 자비의 문을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제공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나의 사도들과 봉사자들로서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오늘날까지 너희들의 삶들에서 일하실 수 있었던 기적과 하느님의 자비의 증인들로서, 그것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가 너희 각자에게 질문하는 이유를 이제 이해하였느냐? 너희는 내 자비의 신비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실수들과, 잘못들 또는 죄들에 대한 정화와 속죄뿐만 아니라, 그것은 너희가 너희의 잘못들을 저질렀을 때 너희가 잃어버린 그 자리에 너희를 두게 될, 하느님의 자비의 강력한 통로를 통해 아버지의 계획 안에서 다시 통합할 수 있는 기회를 세상과 인류에게, 모든 혼들과 마음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이하여, 너희는 신성한 임재 앞에 있게 될 것이며 너희가 하느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도록 너희의 좁은 길들이 열릴 것이다. 최상위의 뜻은 땅의 지구의 남자들과 여자들의 개인적인 의지에 의해서, 심지어 영적으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잊혀지고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자비 안에는 너의 체념에 이르는 문이 놓여 있고, 나의 자비 안에는 너의 겸손에 이르는 문이 있으며, 나의 자비 안에는 하느님께 이르는 너의 겸손과 자의식의 완전한 봉헌에 이르는 문이 놓여 있다.
나는 너희 안에 있는 질서정연한 이 우주적 원리를 깨우기 위해 왔다, 왜냐하면 육신에 속한 내 마음과 나의 영적인 마음이, 가장 작은 것들부터 가장 큰 것들에까지, 모든 필요성들을 섬기고 완성하는 것에 순복하기 위한, 내 자비의 수탁자들로서, 그들 자신들을 잊을 수 있는 자의식들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내 마음 안에 있는 슬픔을 가지고, 오늘날 그들이 그들의 일상의 삶들 안에서 실천할 수 있었던 신성한 자비의 행위들을 통하여, 내 자비의 통로들이 될 수 있는 더 많은 혼들과 함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너희가 들어야 하는 진실과, 너희가 내 말을 실천하는 방법을 너희의 자신들 안에서 받아야 하는 그 진실에 대하여 내가 다시 한번 너희에게 말하기 위해 온 것이다: 내 자비의 참여자들이 될 수 있는 다른 혼들이 없다면 그리고 신의 자비가 정신에서 이론으로, 섬김에서 냉담함으로 있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세계는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나쁘고, 심각한 전쟁에 빠져들 것이라고 나는 너희에게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혼들이 단지 짧은 순간들의 자비가 아닌, 자비로 실천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신성한 자비에 의해 폴란드, 여기에서 존귀하게 제정된 내 자비의 통로의 더 높은 소용돌이에, 내적이며 영적인 측면들에, 나의 신성한 자비가 너희 각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너희가 자비롭지 않게 있을 때, 너희가 불쌍히 여기지 않을 때, 너희의 사역들이 사랑과 빛이 없을 때, 너희는 너희 자신들에 의해서 깨닫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가져오는 자비의 이러한 신비 앞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나와 함께 너희의 서원들을 새롭게 하여라, 왜냐하면 측량할 수 없는 나의 자비에 진실한 참여자들이 될 수 있는 양떼들을, 오늘날 내가 아주 적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비는 신학이 아니고, 정신적인 개념도 아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의 꼭대기에서 열려진, 내 성심의 자비는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행동이다.
이 시대의 끝자락에서, 너희의 사랑과 자비의 행위들이 마치 태양의 빛을 바라보는 것을 피하는 것처럼, 흔들리거나 너무 차가워지지 않도록 나는 오늘 너희 안에 있는 신성한 자비가 영원하고 불변하게 있을 수 있기를 염원하며 너희를 초대한다.
내 자비로운 성심의 따뜻함에 들어가라, 그리하면 너희의 삶들은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것이며, 너희가 나를 향해 취해야 할 단계들을 늦추지 않고, 너희가 성취하기 위해 온 과업을 완수할 것이다.
오늘날, 동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인 것은 비극과, 인식 부족과, 자비의 큰 부재일 뿐만 아니라, 동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인 것은 또한 그에게 보편적인 악이며, 나의 영적인 정부를 통해서, 내가 그에게 끝을 내기 위해, 특히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전쟁들과 갈등들로 영향을 받고 간섭을 받는 무고한 혼들과, 세계의 다른 지역들의 무고한 혼들을 위하여, 내가 끝을 내기 위해 온 보편적인 악이다.
동료들아, 우리는 악의 기둥들이 강화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며,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고, 땅의 지구의 지표면의 혼들을 통해 표현되어야 하는, 더 많은 자비의 통로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마음과 생명의 모든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자비로부터 멀어져 있는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메시지를 가지고 온 것이고 그들 자신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들이나 심지어 그들 자신의 시험들에 둘러싸여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 자비에서 멀어지고 나의 신성한 자비가 가져오는 속죄를 믿는 대신에 죄책감과 정의를 믿기 때문이다.
자비로운 손들과, 자비로운 시선들과, 자비로운 마음들과, 자비로운 봉사자들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희생자들이 이미 충분이 있다. 세상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우주도 이 인류에게서 더 이상의 희생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무엇인가의 희생자들이라고 믿지만, 희생자들이 아닌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변명들을 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사람을 필요하지도 않는다.
거기에서, 나의 자비의 통로가 그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쏟아 부어야 할 은총들이 많이 있고, 이제 내 자신의 눈들로 볼 수 있고 너희가 내 말들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를 내 자신의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너무 많은 은총들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기 때문이고, 나의 업무는 기계적인 업무도 아니고 정적인 업무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내 자비의 역동성은 매우 광범위하고, 나의 우주적이며 신성한 흐름은 승천을 향해서만 너를 오로지 재촉할 수 있다. 네가 정체되어 있을 때, 네 자신의 참호에서 나와, 내 성심의 그리스도적 흐름에 들어가기 위한 단계를 취하여라, 왜냐하면 시대가 시급하고, 필요성들이 다급하며 행성의 지구는 무지와 환상과, 전쟁과 갈등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자비의 통로 안에 모두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통로 밖에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자비의 통로를 통해서, 이 시대에 도달하기를 원하는 장소들에서, 그의 자의식과 함께 들어가고 침투해야 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평범한 자의식이 아닌 성숙한 자의식을 필요로 하며,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마음들이 아닌, 나의 사랑과 나의 영적인 정부의 불로 점화되는 따뜻한 마음들을 필요로 하는 장소들에서, 지도층에게 지연되는 것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너희 각자에게 달려있는 것을 책임감 있게 당연히 여기는 약속이 될 수 있도록, 네가 갖고 있는 나와의 약속이 환상이 아닌 실제가 될 수 있도록, 나는 매일 조금이라도 더 비울 수 있는 자의식과 삶의 성숙함으로 너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부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오늘 내가 이렇게 너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많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내가 너희의 도구들로 내 자신을 유용하게 할 수 있도록 너희가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면, 더 많은 자의식들이 오고 접근할 것이며, 너희는 내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너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증인들이 될 것이다.
나는 많은 불확실한 문들을 닫으며 내 자비의 우주를 향해서 혼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전 세계에 걸쳐서 대부분의 나의 자녀들을 환상 속에 남겨두는 무지의 진보 때문에, 우리가 인류사회 안에서 날로 쇠퇴하는 때를 좇아, 달리고 있음을 알면서, 자비로운 기도를 통해 이 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결심과 내 말들을 실천하는 용기에 대해 나는 너희에게 미리 감사한다.
너희가 내 발걸음을 따를 수 있도록 너희가 이러한 충동을 통해서 다시 깨어나기를 바란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폴란드와 전 세계를 위해, 너희의 스승이신 주님의 이 명령의 일부가 되기 위해, 내부적으로 여기까지 도달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믿음으로 걷는 너희에게 감사한다.
전진하여라, 자비의 전사들이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아멘